4
“역시 편지 정도는 남겨둘걸 그랬나?”
한편 새벽에 저택을 빠져 나왔던 여자는 지금 비잔티 시의 교외 숲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가 바로 저택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문제의 ‘아가씨’였다.
“하긴, 편지 같은 걸 남겼다가는 레이클로가 당장이라도 추격대를 편성해서 쫓아올지도 모르지.”
잠시 멈춰 서서 추격대가 쫓아오는 걸 상상한 아가씨는 몸서리를 치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가끔씩 말을 타고 주변을 둘러보길 잘했지 뭐야, 덕분에 시 외곽에 있는 경비초소를 지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가씨는 숲속을 향해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거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혹시 올지 모를 추격대에 대한 생각과 이번 여행의 목적을 상기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숲 속으로 들어간 후 정확히 30분 후.
“……아하하 이걸 어째?”
지금 이 아가씨, 아니 세넬리아 유리에 페르단은 중대한 사안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길을 잃어버렸잖아~~~!!”
숲이란 낮에도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벌목꾼들도 숲 깊은 곳까지는 나무를 베러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초보 여행자가 한 번 숲에서 길을 잃을 경우에는 숲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엘프(Elf)가 아닌 한에는 숲에서 빠져나오기가 매유 힘들다. 그것이 설령 작은 규모의 숲이라 해도 말이다.
“음… 분명히 아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했어. 좋아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자… …아악~!! 돌아가려고 해도 길을 모르잖아~!!”
원래 숲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면 당사자 본인이 의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어느 사이에 방향감각을 잃게 되어서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난 시에는 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술이 없는 한은 현재 있는 장소에서 큰 소리로 구조를 요청하거나 가능하다면 불을 피워서 생기는 연기 같은 걸 이용해서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 게 정석이지만, 새벽을 틈타서 오늘 가출을 결행한 세넬리아가 그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거기다 방향음치라는, 길 잃기 딱 좋은 능력을 가진 그녀-본인은 남들보다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하지만-는 점점 외진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조,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지금부터 어떤 장애물이 나오든지 상관 안하고 일직선 방향으로 똑바로 숲을 돌파 하는 거야. 아무리 넓은 숲이라도 그렇게 해서 움직이면 분명 끝이 나올 테니까.
혹시라도 옆에 일행이 있었다면 ‘어이, 그건 아니지.’ 라고 말하며 식겁할 만한 계획을 세넬리아는 입 밖으로 내놨다. 본인이 방향음치 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행동이라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라고 누군가가 말해줬으면 싶지만 아쉽게도 현재 세넬리아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세넬리아가 앞으로 나갈 길은 동전 던지기로 정할지, 적당한 나뭇가지를 골라 와서 세로로 세웠다가 쓰러진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사용하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다.
쿠구구구―
“어?”
처음에는 지진이나 동물 등이 집단으로 이동할 때 나는 것 같은 땅울림인 것 같다고 세넬리아는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허리에 위치한 두 자루의 검 중 하나의 칼자루에 손을 올려두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하였다.
비잔티 시의 영내 주변은 몬스터나 위험 동물 등의 소탕 및 사냥을 주기적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동물이나 몬스터에 의한 피해는 없었지만 간혹, 개체생활을 하는 동물이나 몬스터가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 오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세넬리아는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세넬리아는 금방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진동은 평범한 진동이라기보다는… 마치 번개가 내려치기 전의 ‘우르릉-’하는 천둥소리와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실제로 땅이 흔들린다고 느끼기 보다는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세넬리아는 감각적인 감에 의해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시력 또한 좋은 세넬리아조차 처음에는 단순한 착시 현상이나 잘못 본 걸로 알았다.
세넬리아가 무심코 쳐다 본 하늘의 한 위치에, 크기로 치면 대략 한 평 정도 되는, 마치 건물의 외벽이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것 같은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건 대체…”
어느덧 진동이 멈추었지만 하늘에 나타난 이상 현상에 세넬리아는 진동이 멈춘 지도 모른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균열은 점점 커져서 이윽고 10평정도 되는 넓이까지 넓어져 있었다.
언제까지 넓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균열이 멈춘 것은 그 때였다. 그리고 아마도 이 현상을 유일하게 목격하고 있을 세넬리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봤자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지금 저 현상을 보고 있는 세넬리아 자신조차 현실인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리고 세넬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윽고 열 평 정도의 균열이 내는 것으로 생각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껍질이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균열의 일부가 떨어져 지상으로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파편은 마치 물에 녹아버린 물감처럼 대지에 다다르기 전에 공중에서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수 분 정도 지났는데 낙하물에 의한 특유의 충격음이 들리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어떤 원리가 작용했든 정말로 사라져 버린 것이리라.
현재 세넬리아가 있는 위치에서는 균열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옆에서 균열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부서져 내린 균열의 너머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넬리아가 호기심에 균열의 너머를 보기 위해 이동해야할지 생각하려 할 때였다.
돌연히 ‘그것’이 균열의 너머에서 나왔다.
어떻게 보면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유성과도 같아 보이는 녹색의 빛줄기가 균열의 틈에서 빠져나왔다. 유성으로 빛줄기는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대각선 방향으로 지면에 직격해야 했었지만 어쩐 일인지 던진 부메랑이 다시 되돌아오는 원리처럼, 도중에 급격한 커브를 그리며 정확히 세넬리아가 있는 숲을 향해 떨어지려 했다.
“자, 자, 잠깐!! 으악―!!”
뒤늦게 자신에게 오는 빛줄기를 보고 황급히 서있던 자리에서 엎드린 세넬리아의 머리 위로 숲의 나무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빛줄기는 세넬리아를 장소를 지나서 낙하했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꼴사납게 엎드려버린 세넬리아를 뒤로하고 이윽고 빛줄기는 지면에 충돌했다.
5
“………음?”
한 순간에 폭발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앤드류가 내온 다과를 한 움큼씩 집어먹으며 안젤라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동안의 얼굴에, 일견 삐진 것에 대한 화풀이 삼아 그러는 모습을 보노라면 장성한 자식 둘을 둔 어머니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지만 특유의 앳된 얼굴 덕분인지 아직도 ‘젊은 아가씨’로 통할 때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리 어울리지 않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뭔가를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들더니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나서는 테라스 너머의 발코니로 향하였다. 그때까지 앤드류는 안젤라가 쉬는 동안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모은 자료들 중 지금은 가출중인 철없는 자신의 여동생의 저주를 풀어줄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안젤라의 반응에 앤드류는 내심 놀라면서 서둘러 안젤라의 뒤를 따라 발코니로 향했다. 앤드류가 나가보니 안젤라는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마치 멀리 있는 것을 보려는 것처럼 눈 주위에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류, 뭔가 이상한 느낌 못 들었니?”
“이상한…느낌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젤라는 계속해서 먼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언가를 찾거나 보기보다는 마치 짙은 안개 너머의 있는 무언가의 윤곽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음… 뭐랄까… 정확한 방향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갑자기 주변의 마나(Mana)가 확 불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너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니?”
앤드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다른 건 느끼지 못했는데요.”
앤드류의 말에 안젤라는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성한 아이들 둘에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의 모습인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지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반할 정도의 귀여운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이 방에 있는 건 그녀와 그녀의 아들뿐이라 그런 안젤라의 모습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음… 하긴 그럴 거야. 지금 생각해 보니 굉장히 자연스러웠거든.”
“자연스러워…요?”
“응.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뭐라고 할까… 물이 반쯤 담긴 컵에 똑같은 종류의 물을 부은 것 같다…라고 해야 하나?”
보통의 마법사가 그랬다면 잘못 느낀 것이라고 판단하고 넘어 갔을 테지만 다름 아닌 갓 블러드(God - Blood)인 그녀가 느낀 것이기에 앤드류는 무시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어머니가 말씀하신 기운을 느끼진 못했어요. 하지만 말씀대로라면 그저 자연스러운 마나가 늘어난 것뿐이니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웅…. 역시 그렇겠지. 하긴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정도로 한가한 게 아니니. 일단 세넬리아를 찾는 건 저택에 있는 레이클로에게 맡기고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네.”
먼저 앤드류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안젤라가 방으로 다시 들어가기 전에 안젤라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주시했던 방향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 느낌은… 단순히 ‘불어났다’ 고 하는 얌전한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어. 처음 느꼈던 그 느낌은 …예전에 여행 하면서 딱 한번 본적이 있었던 바다에서 사납게 몰아치던 폭풍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말도 안 나올 정도의 ‘거대한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어.’
6
“켁, 켁, 켁”
빛줄기가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흙먼지와 나뭇잎들을 뒤집어 쓴 세넬리아는 기침을 하면서 머리와 옷에 묻은 흙과 나뭇잎을 털어냈다.
“대체 그 빛은 뭐지? 설마 이 근처에서 어떤 마법사가 마법실험이라도 한 건가?”
뒤집어 쓴 흙먼지와 나뭇잎 등을 손으로 대충 털어낸 세넬리아는 호기심 반 불안 반의 심정으로 빛줄기가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마법을 시전한 사람이 있다면 숲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보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방향음치인 세넬리아라도 충격으로 쓰러지거나 부러진 주변 나무들을 이정표 삼아서 이동한 덕분인지 폭심지의 중심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빛줄기가 떨어진 폭심지에 도착한 세넬리아는 그곳에서 족히 10미터는 넘는 크기의 크레이터(Crater)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세넬리아는 크레이터의 바깥을 둘러보다가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로 중심부 쪽으로 시선을 옮겼 크레이터의 중심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넬리아는 조심스럽게 크레이터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중심부에 도착해보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등을 위로 한 채로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쓰러져 있는 이의 옷차림은 활동성이 편해 보이는 녹색 반판 상의를 입고 있었고, 상의 바깥으로 보이는 팔은 그렇게 가늘지도, 그렇다고 근육질도 아닌 딱 적당한 정도의 두께의 팔이었고, 양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있다. 어깨에 걸친 녹색의 망토 사이로 보이는 바지 또한 처음 보는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상의처럼 활동성을 중시한 바지였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평범한 여행자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유독 세넬리아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마치 황금을 녹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블론드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의 양 옆에 한 뼘 정도 넓이로 각각 흰색과 검은색을 띈 채로 자신처럼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머리카락에 처음 눈길이 갔을 때는 세넬리아도 순간 쓰러져 있는 이가 여자인줄 알았으나 얼굴의 윤곽과 남성들만이 갖는 목젖을 보고 쓰러져 있는 이가 남자라는 걸 알게 됐다.
“흰색과 검은색의…머리카락? 염색이라도 한 건가? 아니, 그것보다… 죽은… 건가?”
안타깝게도 세넬리아는 맥을 짚을 줄 모르기에 눈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짧게 몸을 흔들어 보았다.
“저기…. 이봐요. 살아 있어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세넬리아는 상대의 몸을 흔들며 계속해서 불러보았지만 쓰러진 사람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몇 차례 계속 불러보던 세넬리아는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혹시 이 사람… 죽은…건가?”
그렇게 생각한 세넬리아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넓게 만들어진 크레이터와 그곳의 중심에 쓰러져있는 남자, 그리고 아까 본 이상한 빛줄기까지 모든 것을 종합해본 결과, 필시 저기 쓰러져있는 사람은 마법으로 보이는 아까의 빛줄기에 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10미터는 넘을 크레이터의 범위로 보아 그 위력은 엄청 났을 것이다. 모든 생각을 정리한 세넬리아는 결심한 듯 배낭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었다.
“휴우~ 겨우 끝냈다.”
그렇게 말한 세넬리아는 배낭에서 꺼낸 삽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다음, 눈앞에 자신이 만든 것을 바라보았다.
세넬리아의 앞에는 방금 전까지는 없었던 흙더미가 봉긋이 만들어져 있었다.
분명 그 무덤이 있는 자리는 방금 전에 세넬리아가 발견한 사람이 누워 있던 자리였다.
“휴우 오늘 처음 여행을 나와서 시체를 만난 게 좀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갈 수야 없지 않겠어?”
세넬리아는 방금 전 쓰러져 있었던 사람이 아까의 빛줄기에 당해 죽었다고 판단하고는 배낭에서 조립식 삽을 꺼내어 묻어준 것이다.
세넬리아는 무덤을 만든 뒤 주변에 있던 무덤주인의 고깔모자를 주웠다. 고깔모자는 끝이 구부러진 것과 옷의 색과 마찬가지로 녹색인 것을 제외하면 음유시인들이나 마법사들이 주로 쓰는 보통의 고깔 고깔모자였다. 세넬리아는 그 고깔모자를 무덤 위에 올려놓으며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부디 제가 이 숲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죽은 사람을 묻어준 것 치고는 꽤나 특이한 기도였지만 세넬리아에게는 절실한 문제였기에 같은 내용을 속으로 10번은 더 기도한 뒤 삽을 배낭에 넣고 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좋은 일 하나 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숲을 빠져 나가려고 하는 세넬리아의 발목을 잡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두둑―
유난히 조용한 숲이라서 일까? 세넬리아는 처음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을 비웃듯이 그녀의 뒤에서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후두둑― 후두두둑―
계속해서 들리는 저 소리에 대한 궁금함과 불안감에 세넬리아는 결심한 듯 뒤를 돌아보기로 결심했다.
“저…저, 저…!!”
세넬리아는 뒤를 돌아보자마자 너무 놀란 나머지 입 밖으로 완성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세넬리아의 눈앞에는 조금 전 자신이 만든 무덤이 조금씩 들썩거리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세넬리아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빠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그 사람 살아 있었나? 아냐, 분명 숨을 쉬지 않는 걸 확인 했는데… 호, 혹시 좀비(Zombie)나 리치가 된 건가?’
예전부터 소속한 곳이 없는 마법사나, 자신의 수명의 한계가 오는 걸 알게 된 마법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의 하나로 리치가 되는 시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거나 강해지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리치가 된 자들 중에는 인체 실험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바람에 결국에는 몬스터로 분류되어 토벌대가 되어 처벌되기도 하였고, 어떤 나라에서는 일정 절차를 거쳐서 등록이 된 경우에는 ‘국민’으로 인정하기도 한다지만 그런 사례가 있는 국가는 곤드와나 대륙에서는 한 곳 밖에 없다.
가뜩이나 옛날의 그 일 때문에 리치 같은 부류는 딱 질색인 세넬리아로서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금세 혼란스러운 마음과 정신을 어찌어찌 침착하게 진정시킨 다음, 현재 눈앞의 상황에 대하여 최선의 행동을 판단한 세넬리아는 허리에 찬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뽑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가 자세를 잡고 무덤을 주시하였다.
‘한 번에 끝내자! 무덤에서 나오는 순간에 끝내야해!’
검을 쥔 세넬리아의 손에 조금씩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세넬리아가 집중해서 보고 있던 무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언제든지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무덤의 형태를 무너뜨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어?”
한순간 무덤의 움직임이 멈추자 세넬리아의 집중이 살짝 흐트러졌다. 세넬리아가 아차-라고 속으로 혀를 차려는 다음 순간.
“크으으아악―――――――!!!!”
움직임을 멈추었던 무덤에서 검은 물체가 괴성과 흙더미를 토해내며 튀어 나왔다.
“큭!”
순간의 방심으로 세넬리아는 하마터면 공격할 찬스를 놓칠 뻔했지만 곧바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검은 물체의 왼쪽 어깨 죽지라고 생각 되는 부분을 노려서 대각선으로 베어 내렸다.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에 비해서는 절도 있는 베어내기의 자세가 세넬리아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같은 조건으로 한다면 어지간한 굵기의 생나무도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여서 세넬리아 자신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대로 잡아내었다고 생각하였다.
적어도 검이 목표물에 내려쳐지는 그 순간에는.
처음 이상(異常)을 안 것은 소리였다. 카강- 하고 금속성의 짧은 울림과 함께 대각선으로 내려 베어 들어가던 검의 궤도가 되돌아갔다. 그것도 단순히 원래 위치로 되돌아 간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검에 주던 힘까지 더해졌기에, 마치 둔기 계열의 무기를 휘두를 때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서 휘청거리는 모양새처럼 세넬리아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 세넬리아의 무너진 자세는 연습 시합이나 대련이라면 자세를 빠르게 수정해서 다시 한 번 공격 자세를 잡는다면 어찌어찌 다시 싸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자신의 모습과 그렇게 된 불의의 공격을 더해, 이것이 목숨이 오갈 수 있는 실전이라는 상황이 겹쳐져서, 회피나 자세의 수정 중 하나를 수행해야한다는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할 찰나의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세넬리아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런 순간적인 허점을 놓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움직였다’라는 것도 세넬리아는 겨우 인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야에서 상대의 몸이 흔들리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을 때는 이미, 세넬리아는 오른쪽 관자놀이 쪽에서 오는 강렬한 충격과 함께 짧은 부유감을 느끼면서 저만치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크윽, 눈뜨자마자 땅속이라 죽을힘을 다해 기어 나왔더니만… 다짜고짜 어떤 놈이 칼질이야―!?”
머리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세넬리아는 무슨 말인지 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신이 묻어주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서 자신을 공격한 자가 화를 내는 것처럼 내뱉는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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